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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AI 의료기기 허가는 549건으로 29개 진료과에 걸쳐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의사 1,043명 대상 메디게이트 설문에서 실제 병원 가동률은 19.3%에 그쳤다.
2026년 보건복지부 R&D 예산은 1조 652억 원(전년 대비 12.6% 증가)까지 늘었지만, AI 의료기기 수가는 병리검사 2,920원부터 기타 310원까지로 낮아 개발 기업이 투자를 회수하기 어렵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2021년~2025년 3월 AI 기업에 제공된 공공 보건의료 데이터는 17건뿐인데, 같은 기간 연구기관·대학에는 8,355건이 제공됐다.
정부는 개별 AI 행위별 보상 대신 병원이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 평가하는 기관 단위 수가 체계를 2027년 상반기 시범사업으로 준비 중이다.

AI 의료기기 허가 549건. 한국데이터경제의 2026 심층리포트에 따르면 이 숫자는 29개 진료과에 걸쳐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실제로 켜져 있는 병원은 5곳 중 1곳도 안 된다. 의사 1,043명을 대상으로 한 메디게이트 설문에서 병원 시스템의 실제 가동률은 19.3%에 그쳤다. 허가증은 기술의 출생증명서다. 수가와 데이터는 시장의 주민등록증이다. K-의료 AI는 이 둘 사이에서 멈춰 서 있다.

정부는 1조 652억을 쏟아부었다

투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2026년 보건복지부 연구개발 예산은 1조 6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6% 늘었고, 최근 5년 연평균 11.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AI 기반 디지털·의료 혁신에만 1,552억 원이 배정됐다. 권역책임의료기관 17곳에는 'AI 기반 진료시스템 지원사업'으로 국비 142억 원이 투입된다.

충북대병원과 부산대병원은 입원 환자의 활력징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심정지와 패혈증을 조기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전북대와 부산대는 흉부 X-ray와 CT 영상판독 보조를, 전남대·충남대·전북대는 음성인식 기반 진료기록 자동화를 도입한다. 전부 구독형 SaaS 사용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2026년 7월 22일 복지부와 과기부, 국가AI전략위원회가 내놓은 'AI 기본의료 전략'은 더 큰 그림이다. 전국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영상판독 보조, 음성 의무기록, 만성질환 관리를 묶은 패키지형 AI 솔루션을 보급하고, 권역책임 17곳과 지역책임 55곳을 하나의 AI 플랫폼으로 잇는 '공공의료 AI 고속도로'를 2029년까지 확대한다. 허가에서 시장 진입까지 걸리던 기간도 490일에서 80일로 단축됐다. 투자는 전방위로 시작된 상태다.

병원에서 멈춘 이유 — 수가 310원과 데이터 17건

문제는 돈이 병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AI 의료기기의 '인공지능 분석 및 활용료' 수가는 병리검사 2,920원, 특수영상진단 1,810원, 내시경·초음파 1,180원, 기타 310원으로 나뉜다. 수십억 원을 들여 개발한 기업이 건당 수천 원으로 투자 회수를 하기 어렵고, 병원도 도입 비용 대비 수가가 낮아 시스템을 켤 이유가 없다.

결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국내 최초 AI 의료기기 상장사이자 누적 허가 34건으로 업계 최다인 제이엘케이의 2024년 매출은 14억 원이다. 일본이 AI 영상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에 가산수 600엔, 약 5,400원을 별도로 책정한 것과 대비된다. 미국은 의사의 81%가 AI를 일상 도구로 쓰고 기관 도입률이 75%에 이르는 반면, 한국의 병원 시스템 도입률은 19.3%다. 약 3.9배 차이다.

데이터도 막혀 있다. 감사원이 2026년 3월 24일 발표한 '보건의료분야 인공지능 대비실태' 감사는 2021년부터 2025년 3월까지 4년 3개월간 AI 기업에 제공된 보건의료 공공데이터가 17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연구기관과 대학에는 8,355건이 제공됐다. 심평원이 보유한 비정형데이터 약 20만GB 가운데 표준화가 끝난 것은 0.5%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 4,499개 중 공공 비정형데이터를 직접 제공받은 곳은 0곳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서 의사 개인의 AI 활용 경험은 47.7%였지만,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인프라로 옮겨가지 못하고 있다.

바뀌는 게임 — 기관 단위 수가와 AI-SaaS HIS

구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개별 AI 행위를 건당 보상하던 방식을 버리고, 의료기관이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 평가해 기관 단위로 보상하는 수가 체계를 준비한다. 데이터 표준화 수준과 AI 거버넌스, 병원 운영 효율화가 평가 대상이다. 2026년 하반기 수가 연구를 거쳐 2027년 상반기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병원정보시스템도 바뀐다. 과기부는 2026년 4월 '공공 병원정보시스템 AI 클라우드 서비스 전환 지원 사업'을 공모했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이 EMR과 처방전달시스템, 병원경영정보시스템 등 5대 핵심 시스템을 AI 기반 클라우드 SaaS로 전환하고, 2027년까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으로 확산한다. 투입 예산은 약 300억 원이다.

이 사업의 성격을 정확히 짚는 말이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담당자는 "병원마다 수백억씩 개별 구축하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 사업은 단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공공의료 데이터 표준화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구독형으로 바꿔 전국 병원의 데이터 형식을 통일하겠다는 의도다. 미국 의사 81%가 AI를 일상 도구로 쓰는 것과 달리 한국은 47.7%다. 격차는 수가와 데이터에서 만들어진다.

늦지 않았다 — 영상판독 단품에서 운영 효율로

K-의료 AI의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수가와 데이터 구조였다. 건당 310원 수가 아래에서 어떤 알고리즘도 살아남기 어렵고, 17건의 공공데이터로는 어떤 모델도 완성되지 않는다. 도입 솔루션도 영상판독 AI에 73.9%가 쏠려 있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기관 단위 수가가 시행되면 병원은 AI를 단품 구매가 아니라 운영 성과로 평가받게 된다. AI-SaaS HIS 전환은 전국 병원의 데이터 표준화를 사실상 강제한다. 의료 AI 기업의 과제는 영상판독 단품에서 벗어나, 병원 운영 효율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승부하는 것이다. 2027년 상반기 시범사업이 그 분기점이다.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데이터부터 표준화하는 기업이 다음 시장을 연다.

참고 자료

  • 한국데이터경제 — 2026 AI 의료기기 심층리포트(허가 549건, 29개 진료과)
  • 메디게이트 — 의사 1,043명 대상 AI 병원 시스템 가동률 설문(19.3%)
  • 감사원 — '보건의료분야 인공지능 대비실태' 감사 결과(2026년 3월 24일)
  • 보건복지부·과기부·국가AI전략위원회 — 2026년 R&D 예산 및 'AI 기본의료 전략'(2026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