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과 전문의 1명이 혼자 모든 CT와 MRI를 판독하는 지역 병원. 병원 내 심정지 환자의 1년 생존율은 13.4%에 불과하다. "AI가 의사를 대체할 거다", "영상의학과는 이제 필요 없어진다" — 2023년부터 끊임없이 나온 경고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의사가 부족한 병원에 AI가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대체가 아니라 보완. 숫자로 확인한다.
루닛, 상급병원 57%에 침투한 AI 판독의 경제학
루닛은 국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57%에 유방촬영 AI를 공급했다. 흉부 엑스레이 AI는 국내 전체 촬영량의 20%를 분석한다. 민감도 81.9%, 정확도 95.6%는 전문의 평균을 웃도는 수치로 확인됐다. 올해 1분기 매출 240억원은 전년 대비 25% 성장한 수치이며,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이 97%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권역책임의료기관 6곳에 142억원을 들여 루닛 솔루션을 도입했다. 수도권 대형병원과 같은 판독 품질을 지역 환자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환자가 직접 추가 AI 판독을 선택하고 비용을 내는 B2C 모델을 시험 중이다. 분석 건당 매출이 기존 B2B 대비 10~20배에 달하는 구조다. 출시 1년 만에 미주 330곳 이상 의료기관이 유방암 통합 솔루션을 도입했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국가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에 AI를 처음 적용했다.
뷰노 딥카스, 심정지 21% 감소의 임상적 의미
뷰노의 심정지 예측 AI '딥카스'는 혈압·맥박·호흡·체온 네 가지 활력징후만으로 24시간 내 위험을 예측한다. 별도 장비나 검사가 필요 없다. 이미 병원에 있는 모니터링 데이터로 작동한다. 다기관 임상 연구에서 2차 병원의 심정지 발생률을 21%, 사망률을 15% 낮췄다. 패혈증 환자군에서는 심정지가 29% 감소했다. 신속대응팀을 꾸릴 인력이 없는 중소병원에서도 효과가 입증된 첫 사례다. 예측 정확도는 AUROC 0.905, 평균 예측 시점은 심정지 발생 15.8시간 전이다. 인하대병원 전향 연구에서는 심정지가 46%, 사망률이 35%나 감소했다. 도입 후 총 재원 기간은 평균 0.51일, 중환자실 재원은 1.32일 단축됐다. "연간 생존율 13.4%인 원내 심정지에서 21% 감소는 통계가 아니라 수백 명의 생명이다." 현재 국내 170개 병원, 6만 5000병상에서 비급여로 쓰이고 있으며 FDA 혁신의료기기로도 지정됐다.
코어라인소프트, 판독 3분을 10초로 줄이다
충청권 6개 공공의료원의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병원당 1~3명에 불과하다. 천안의료원은 유일한 전문의가 모든 CT와 MRI를 판독하고, 엑스레이는 외주 판독에 의존한다. 코어라인소프트의 AI는 폐결절·관상동맥 석회화·COPD를 한 번의 스캔으로 동시 분석한다. 판독 시간은 장당 3분에서 10초로 줄었다. 정부는 23억 2000만원을 투입해 이 시스템을 공공의료원에 보급했다. 원광대병원은 모든 흉부 CT에 AI 분석을 기본 적용하는 판독 안전망을 구축했다. 국내 의사 212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7.7%가 실제 업무에 AI를 사용 중이며, 가장 필요한 기능으로 영상 판독 보조를 첫손에 꼽았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의료 AI는 아직 행위별 수가가 없다. 허가를 받아도 수가 책정까지 평균 5년이 걸리는 게 업계 현실이다.
AI는 의사를 대체하지 않는다 — 못 하는 병원의 의사를 돕는다
의료 AI의 본질은 대체가 아니라 안전망이다. 놓치기 쉬운 폐결절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하고, 심정지 위험을 15시간 전에 알려준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일수록 그 가치는 배가된다. 루닛·뷰노·코어라인소프트의 사례는 기술 완성도보다 실제 임상 데이터로 증명된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확산의 관건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수가와 정책이다. AI가 선택이 아닌 운영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허가부터 보험 등재까지의 긴 터널을 단축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준비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현장이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시작은 작아도 된다. 판독 보조 하나부터 측정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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