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국내 SI 빅4의 실적 발표가 끝났다. 삼성SDS 7조, LG CNS 2조8358억, 현대오토에버 2조1864억, 포스코DX는 역성장. 이 숫자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였다. AI·클라우드. "AI가 SI를 대체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SI 기업들은 오히려 AI를 발판 삼아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고 있다. 이 변화가 중견·중소 ERP·B2B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크다.

삼성SDS — 클라우드 CSP 매출 24% 증가, 대외 클라우드 75% 폭증

삼성SDS 2분기 매출은 3조717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318억 원. 눈에 띄는 건 클라우드 사업이다. CSP 부문 매출이 24% 증가했고, 대외 클라우드 사업은 무려 75% 늘었다. 삼성 클라우드 플랫폼(SCP) 수요 증가와 공공·기업 대상 GPUaaS 서비스 확대가 주효했다. MSP 부문도 금융권 AX 프로젝트와 조선 업종 ERP 구축 사업에 힘입어 17% 성장했다. 전체 IT서비스 매출은 1조7625억 원으로 5% 증가, 클라우드만 따로 떼면 7794억 원이다.

삼성SDS는 단순한 SI에서 'AI 풀스택'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AI 인프라부터 AI 서비스, AI 플랫폼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략이다. 지난 3월 엔비디아 B300 기반 GPUaaS 출시에 이어, 7월에는 국산 NPU 퓨리오사AI '레니게이드' 기반 NPUaaS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우리은행에 175개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적용하는 사업도 수주했다. 현재 110MW 규모의 AI 인프라는 2029년 230MW, 2031년 800MW 이상으로 확장 계획이다. 인프라부터 에이전트까지, AI 밸류체인 전체를 삼키는 전략이다.

LG CNS — AI·클라우드가 전체 매출의 59% 차지

LG CNS의 상반기 매출은 2조8358억 원(전년比 +6.1%), 영업이익 2221억 원(+1.1%). 핵심은 AI·클라우드 사업이 전체 매출의 59%인 1조6714억 원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미래 먹거리가 아니라 현재의 주력 사업이 된 셈이다.

LG CNS는 SAP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ERP AX사업단'을 신설하고, 에이전틱 AI 기반 ERP 테스트 자동화 솔루션 '퍼펙트윈 ERP 에디션'을 글로벌 시장에 내놨다. SAP 사파이어 2026에서 공개한 이 솔루션은 재무·생산·구매·물류·인사 등 전 영역의 테스트 시나리오를 AI가 스스로 설계한다. 기존 수일 걸리던 작업을 수 시간으로 단축했다. LG CNS는 이를 일본 히타치그룹과의 파트너십으로 글로벌 확장까지 노리고 있다. SAP ERP 전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지금, 테스트 자동화는 '속도'가 경쟁력인 시장에서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다. ERP 시장의 판이 '구축'에서 'AI 적용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현대오토에버 — 차세대 ERP 전환이 이끈 16.6% 성장

SI 빅4 중 상반기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은 현대오토에버였다. 상반기 누적 매출 2조186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6% 성장, 영업이익도 1117억 원(+3.4%)을 기록했다. 엔터프라이즈 IT 부문 매출은 1조384억 원으로 27.9% 증가했다. 회사 측은 "고객사의 클라우드 전환 수요와 차세대 ERP 구축 프로그램 실적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현대오토에버의 성장은 단순한 IT 아웃소싱 확대가 아니다. 클라우드 전환 + 차세대 ERP 구축이라는 구체적 수요가 실적을 견인했다. ERP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기업 IT 투자의 핵심 축이라는 방증이다. 다만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은 자동차 산업 불확실성으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그룹사 의존도가 높은 SI 기업의 구조적 리스크를 동시에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네 회사의 전략이 정확히 엇갈린다는 점이다. 삼성SDS는 AI 인프라-플랫폼-서비스 풀스택, LG CNS는 SAP 기반 ERP AX와 글로벌 확장, 현대오토에버는 차세대 ERP 구축과 해외 IT 사업, 포스코DX는 피지컬 AI와 제조 AX다. 같은 'AI+클라우드'라는 방향 안에서도 각자의 DNA에 맞는 길을 선택했다. 이 지점이 SI 빅4의 실적을 단순한 숫자 비교가 아닌 전략 참고서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포스코DX — 그룹 의존도가 발목 잡은 역성장의 교훈

포스코DX는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8%, 영업이익이 42.3% 감소했다. 그룹사 투자 조정 여파가 직격탄이 됐다. 대외 고객 매출 비중은 3%에 불과하다. 포스코DX는 AI 네이티브 컴퍼니를 선언하고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를 양대 축으로 내세웠지만, 아직 숫자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포스코DX의 사례는 중견·중소 ERP·B2B 기업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특정 대기업 그룹사에 매출이 집중된 구조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취약하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고객 다변화 없이는 외부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삼성SDS의 대외 클라우드 매출 75% 증가, LG CNS의 전 사업 대외 매출 확대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지금 SI 시장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따로 있다. LG CNS의 AI·클라우드 매출 비중 59%, 삼성SDS의 대외 클라우드 75% 성장. 이 숫자들이 말하는 건 분명하다. SI의 주력 수익원이 인력 기반 구축·운영에서 플랫폼 기반 클라우드·AI 서비스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2024년만 해도 'AI가 SI를 대체할까'라는 질문이었다면, 2026년 상반기 실적은 'AI를 가장 잘 파는 SI가 이긴다'로 답이 바뀌었다. ERP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SDS MSP의 17% 성장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조선·금융 ERP 프로젝트였다. 결국 AI 시대에도 ERP는 투자의 중심축이다. 다만 '누가 그 ERP 위에 AI를 더 잘 얹느냐'가 경쟁력을 가른다. 이게 SI 빅4 실적이 ERP·B2B 업계에 던지는 가장 직설적인 메시지다.

중견·중소 ERP·B2B 기업이 이 데이터에서 읽어야 할 것

SI 빅4의 상반기 실적은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AI와 클라우드는 SI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SI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인력 기반의 구축·운영(SI+ITO)이 주력이었다면, 지금은 클라우드 인프라(CSP)와 AI 서비스(MSP+AX)가 성장을 이끈다. 삼성SDS의 대외 클라우드 75% 성장, LG CNS의 AI·클라우드 59% 비중, 현대오토에버의 차세대 ERP 수요 증가 —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견 ERP 기업이 주목해야 할 세 가지 변화다. 첫째, ERP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AI 시대에도 기업의 핵심 데이터가 ERP에 있고, AI 적용의 출발점도 ERP다. 삼성SDS의 조선업 ERP MSP 17% 성장과 현대오토에버의 차세대 ERP 실적 반영이 증명한다. 둘째, '구축'보다 '전환'이 돈이 된다. 기존 ERP를 클라우드로 옮기고 AI를 접목하는 수요가 폭발적이다. 셋째, 특정 고객 의존도를 반드시 낮춰야 한다. 포스코DX의 사례는 대외 고객 확보 없이는 어떤 기술 비전도 공허하다는 걸 보여준다.

2086년 상반기, SI 시장의 판도는 단순하다. AI·클라우드에 베팅한 기업은 성장했고, 기존 방식에 머문 기업은 흔들렸다. 이 공식은 비단 대기업 SI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ERP·B2B 시장의 중견 기업들도 똑같은 기로에 서 있다. 차세대 ERP를 팔기 전에, 먼저 자기 회사의 클라우드·AI 체질부터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