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일본 세토내해에서 여객선 "Olympia Dream Seto"가 선장 없이 오카야마에서 쇼도시마까지 5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스스로 항해했다. Mitsubishi Shipbuilding이 개발한 SUPER BRIDGE-X 자동조선 시스템이 이룬 세계 최초 자율운항 레벨4 상업운항이었다. 두 달 뒤 이탈리아 Ancona 조선소에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는 34,000톤급 초호화 크루즈 'Four Seasons I'가 첫 항해를 시작했다. 글로벌 조선업은 지금 'AI 두뇌' 경쟁에 돌입했고,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연평균 12.6% 성장해 2028년 2,357억 달러(약 310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Acute Market Reports]. 한국 조선사는 이 판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세계 최초 레벨4 상업운항 — Mitsubishi의 MEGURI2040
일본재단 주도로 2020년 시작된 MEGURI2040 프로젝트는 2025년 12월, Stage 2에 참여한 4척 모두 일본 국토교통성(MLIT) 선박검사에 합격하며 상업운항에 돌입했다 [Nippon Foundation].
핵심은 Mitsubishi Shipbuilding의 SUPER BRIDGE-X(SB-X)다. 충돌·좌초 회피 알고리즘과 경보 관리 기능을 탑재했고, 일본해사협회(ClassNK)로부터 기술인증(TQ)을 획득했다. 500인승 여객선 Olympia Dream Seto의 레벨4 상업운항이 대표 사례다 [MHI].
주목할 점은 51개사가 참여한 DFFAS+ 컨소시엄이다. NYK·MOL·Kawasaki Kisen 같은 해운사부터 JRCS·Furuno(항해장비), Tokio Marine(해상보험)까지 — 기술·규제·보험·통신을 한 번에 해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목표는 분명하다. 인구감소로 인한 선원 부족 해소, 해양사고 예방, 낙도항로 유지, 내항물류 안정화다.
Mitsubishi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5년부터 K Program에 착수했다. Osaka Univ, Kyoto Univ, JAMSTEC 등 10개 기관과 함께 선박 라이프사이클과 공급망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가상 엔지니어링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1~3개월 앞선 극한기상(태풍) 계절예측 기술까지 통합한다. 5년 프로젝트 총예산 최대 120억 엔(약 1,100억 원) — 단일 선사 PoC 수준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 차원의 투자다 [MHI K Program].
FPSO(부유식 원유생산설비) 분야에서는 Chevron, DNV와 협력해 선체·계류·라이저 디지털트윈을 구축했다. 계획외 정지 방지, 노후 설비 수명 연장, 유지보수 최소화로 자산 라이프사이클 비용을 절감하는 게 목표다. DeepStar 프로젝트 챔피언도 참여 중이다 [MHI Technical Review Vol.61 No.2].
AI가 용접을 배우는 조선소 — Fincantieri의 'twin of twins'
2026년 2월, 이탈리아 Fincantieri가 Four Seasons I을 인도했다. 34,000GT·207m·95스위트 초호화 크루즈. 단순한 선박이 아니다. Navis Sapiens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 지능형 선박이다. Fincantieri NexTech와 Accenture의 합작법인 Fincantieri Ingenium이 개발한 AI 플랫폼이 실시간 데이터로 선박의 상태를 학습·적응·최적화한다 [Fincantieri].
CEO Pierroberto Folgiero는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지성을 가진 선박, 학습·적응·성장하는 선박" — 크루즈 승객 경험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운영 효율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게 핵심이다.
Fincantieri의 디지털트윈 전략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들은 "twin of twins"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제품(선박)의 디지털트윈과 공정(조선소)의 디지털트윈을 상호 연결하고, 여기에 경제·재무 차원까지 통합한다. Information Layer(Data Lake) → Application Layer(소프트웨어 도구) → Decision Support(시뮬레이션·의사결정) 3계층 구조다. 핵심 서비스는 운항 가용성 평가, 예측 정비, 에너지 소비 최적화, 피로 해석,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이다. 선박이 항구에 없어도 원격으로 업그레이드 설계가 가능해 정박 시간과 비용을 절감한다 [Naval News].
가장 도전적인 시도는 Generative Bionics와의 휴머노이드 용접로봇 프로젝트다. 4년 협업(2026~2030)으로, 2026년 말 Sestri Ponente 조선소에서 첫 실증에 들어간다. AI 기반 비전·지각으로 용접심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복잡한 조선소 환경에서 자율 보행하며, 인간 작업자와 안전하게 협업한다. 배경은 간단하다 — 생산 복잡성은 증가하는데 숙련공은 부족하다. Physical AI로 반복·고강도 작업을 대체하겠다는 전략이다 [Fincantieri Generative Bionics].
Folgiero CEO는 "첨단 로봇공학과 AI는 유럽 조선업 경쟁력의 전략적 레버"라고 강조한다. Fincantieri는 이미 Ancona 조선소(36만㎡, 월 1,200톤 선체 생산)에서 AR·AI·협동로봇을 투입하는 Operations Excellence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레벨3에서 레벨4로 — 한화오션(옛 대우조선)의 DS4
한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22년 11월,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시험선 '단비(DAN-V)'로 서해 제부도 해역에서 자율운항 테스트에 성공, Lloyd's Register로부터 자율운항 레벨3 인증을 획득했다. IMO 기준으로 레벨3은 육상원격제어 단계. 레벨4(완전무인)를 목표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한화오션의 스마트십 플랫폼 DS4는 빅데이터와 육상관제센터를 연동해 최적운항경로를 산출하고 기자재 상태를 실시간 진단한다. 더 주목할 것은 GE파워컨버전과 공동개발한 ESA( Electrical Signature Analysis) 예지정비 시스템이다. 전류·전압 스펙트럼을 분석해 기자재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진단한다. 운용비 절감, 재고관리 효율화, 운항 안전성 확보가 기대 효과다. 2024년까지 개발을 완료해 건조 선박에 탑재하고 수주 경쟁력까지 강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SR타임스].
의미 있는 성과도 있다. 옥포조선소에서 건조한 세계 최초 스마트 풍력발전기설치선(WTIV)에 DS4를 탑재한 것이다. 해양플랜트 최초의 스마트십 적용 사례로,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국내 조선업계에서 국산 스마트십 기술이 처음으로 실선에 적용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경제운항, 안전운항, 육상 실시간 빅데이터 모니터링까지 — 개념 증명을 넘어 상업 운항 단계로 진입했다.
다만, 2024년 완전자율운항을 목표로 했던 로드맵은 한화오션 체제 전환 이후 구체적 마일스톤 공개가 더딘 상태다. Mitsubishi가 레벨4 상업운항을 현실화한 시점에서, 한국 조선사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지금 당신의 조선소가 할 일
자율운항은 더 이상 실험실 기술이 아니다. 일본은 여객선이 혼자 항해하고, 이탈리아는 AI가 용접을 배우는 조선소를 짓고 있다. 시장은 2028년 310조 원으로 성장한다. 한국 조선사도 DS4로 가능성을 증명했지만, 한화오션 체제 전환 후 구체적 마일스톤 공개가 더딘 건 사실이다.
조선·해운 담당자가 지금 할 수 있는 3가지:
1. 자사 선박에 적용 가능한 자율운항 레벨부터 정의하라. IMO 4단계(항해보조→원격제어→완전무인) 중 당신의 함대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선박에 레벨4가 필요한 건 아니다. 예지정비로 시작해 운용비 절감부터 확인하라.
2. Mitsubishi처럼 50개사 생태계를 꾸릴 필요는 없다. GE-한화오션 사례처럼 글로벌 장비사 1곳과 예지정비 PoC부터 시작하면 운용비 절감 효과를 6개월 내 확인할 수 있다. ESA 같은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다.
3. 디지털트윈 도입 시 Fincantieri의 교훈을 기억하라. 기술이 목표가 아니다. 3계층 아키텍처도 중요하지만, 변화관리와 직원 교육이 실제 성패를 가른다. 용접로봇을 들여놓기 전에, 현장 작업자들이 왜 이게 필요한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선박 한 척의 수명은 30년이다. 지금 건조하는 배가 2050년대까지 운항한다. AI 탑재는 더 이상 '옵션'이 아니라 선박의 기본 사양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