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생산성 30% 향상, 용접 100% 자동화, 설계 자동화율 2배, 1,600억원 투자. 한국 조선 3사가 AI에 거는 숫자다. 구호가 아니다. 이미 울산 조선소에선 로봇 200대가 철판을 자르고, 거제 150만평 야드를 드론이 30분마다 스캔하며, 설계 도면은 AI가 자동으로 작성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AI 전쟁 — 누가 얼마나 빨리, 어떤 전략으로 뛰고 있는지 숫자로 추적했다.
HD현대 — 팔란티어·지멘스와 짜는 '지능형 자율 조선소'
"AI 성패는 기술이 아닌 조직문화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025년 11월 CEO 직속 AIX추진실을 신설하며 한 말이다. HD한국조선해양 김형관 대표가 AI 전담 조직을 총괄한다. 조직 격상과 동시에 3단계 FOS(Future of Shipyard) 로드맵을 발표했다.
FOS 3단계:
1단계 '눈에 보이는 조선소' — 설계·생산·안전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 이미 완료됐다.
2단계 '연결·예측 최적화 조선소' — 디지털 트윈 '트윈포스(TWIN FOS)'가 핵심이다. AI가 공정 지연을 사전에 예측하고, 자재 투입 순서와 크레인 경로를 최적화한다. 팔란티어 파운드리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멘스 팀센터·테크노매틱스로 설계부터 생산까지 단일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한다.
3단계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 — 2030년 목표. 축적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로봇과 장비를 실시간 제어하고, 품질·안전까지 자율 관리하는 단계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현장:
- AI 기반 철판 절단 최적화 → 자재 손실 최소화. 숙련공 작업 패턴을 학습해 절단 배치를 자동 제안한다.
- LNG/LPG 화물창 설계에 AI 투입해 반복 계산·검증 시간 대폭 단축.
- 울산조선소에 용접·협동 로봇 200여대 배치. 1만 3,000개 조선 용어를 학습한 AI 번역 서비스도 가동 중.
- HD현대삼호 + KR(한국선급) 공동 개발: AI 해석 모델로 선박 반목 배치를 실시간 수준으로 최적화. 온프레미스 LLM 기반 설계문서 분석 시스템도 2026년 Posidonia에서 개발 완료 서명.
목표는 명확하다. 2030년까지 생산성 30% 향상, 공사 기간 30% 단축. 조선업에서 공기 30% 단축은 수주 경쟁력의 결정적 차이다.
삼성중공업 — 설계 도면 자동으로 그리는 S-EDP
"DX + AX + RX가 결합한 스마트 조선소."
최성안 삼성중공업 부회장이 2025년 10월 'Auto2Vision' 행사에서 직접 발표한 비전이다. 이 자리에서 조선해양업계 최초의 자동화 플랫폼 S-EDP(SHI-Engineering Data Platform)를 공개했다. 페트로나스, ENI 등 글로벌 고객사 80여명이 지켜봤다.
S-EDP가 바꾸는 것:
- 웹 기반 동시 접근 → 설계자·발주처·협력사가 실시간으로 한 화면에서 협업
- 도면·문서·계산서 자동 작성 → 설계 기간 대폭 단축
- 1D 데이터, 2D 도면, 3D 모델 간 정합성 자동 확보 → 데이터 불일치로 인한 재작업 제거
- 문서·도면 중심 → 데이터 기반 업무 패러다임 전환
2030년 목표: 설계 자동화율 2배 이상 향상.
흥미로운 건 사업화 전략이다. 삼성중공업은 S-EDP를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 파트너십 해외 조선소에 S-EDP 자체를 판매할 계획이다. 조선사가 AI 플랫폼을 수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화오션 — '피지컬 AI'로 용접 100% 자동화, 美 필리조선소까지 확장
"로봇이 용접 간격을 1mm 단위로 인식하고, 공법을 스스로 선택한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가 이끄는 스마트야드 전략의 핵심은 피지컬 AI다. 소프트웨어 AI와 로봇 하드웨어를 모두 내재화해, AI가 물리적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2025년 11월 AX 사업부를 출범하며 속도를 더했다.
용접 공정 AX 적용 현황 (2026 → 2030 목표):
- 실내 용접: 67% → 100%
- 옥외(도크) 용접: 8.6% → 100%
- 포설(케이블·배관): 30% → 60%
작업자 1명이 로봇 4~5대를 동시에 관리한다. 시간당 처리량이 4~5배 증가한 셈이다. 로봇은 용접 간격 변화를 인식해 공법을 자동 선택하며, 2030년까지 스스로 이동하는 자율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디지털 생산센터 — 이미 2021년 가동 중:
거제조선소 150만평을 드론과 IoT 센서로 30분 단위로 모니터링한다. 기상 변화와 공정 지연을 사전에 예측·시뮬레이션한다. 효과는 구체적이다:
- 생산계획 수립 시간: 스케줄러 10명×2일 → AI 활용으로 25% 단축
- 발주사 문의 응답: 기존 2~7일 → 1시간 이내
투자 규모: 2024~2026년 스마트야드에 1,600억원. 미국선급(ABS)과 기술 인증·실증도 병행 중이다.
美 필리조선소 — 스마트야드 기술의 글로벌 확장:
2024년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스마트야드 기술을 이식 중이다. ERP·생산시스템을 2026년 11월 가동 목표로 구축 중이며, 디지털화 수준을 3배 이상 끌어올릴 계획이다. 용접 로봇 '인디'를 2025년 도입했고, 연간 생산능력을 현재 1~1.5척에서 20척으로 확장한다. 미 해군 MRO(유지·보수) 사업의 교두보 역할도 기대되고 있다.
인력 영향: 스마트야드로 인건비 30~40% 절감 전망.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로 인한 숙련공 부족을 외국인 노동자 확대 대신 AI 자동화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조선3사 AI 전략,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공통점부터 보자:
- 데이터 통합이 최우선 과제 — 3사 모두 사일로화된 설계·생산·안전 데이터를 단일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AI 이전에 데이터부터 정비하는 접근법이다.
- 2025년 하반기, AI 조직 격상 — HD현대(CEO 직속 AIX추진실, 11월)와 한화오션(AX 사업부, 11월)이 동시에 AI 전담 조직을 최고위급으로 올렸다. 우연이 아니다.
- 피지컬 AI로의 전환 — 용접·도장·포설 등 고위험·고강도 반복 작업에 로봇+AI를 결합하는 현장 자동화가 공통 방향이다.
- 글로벌 확장 — 자체 개발한 AI 기술을 해외 조선소에 수출·이식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삼성중공업 S-EDP 판매,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이식이 대표적이다.
차이점:
- HD현대는 팔란티어·지멘스 등 글로벌 톱티어 파트너와 협업하며 데이터 인프라에 집중 투자한다. '예측 최적화'가 핵심이다.
- 삼성중공업은 설계 공정의 데이터 기반 자동화에 집중한다. 플랫폼 사업화까지 염두에 둔 게 차별점이다.
- 한화오션은 물리적 작업 자동화(로봇)에 가장 공격적이다. 용접 100% 자동화라는 구체적인 수치 목표와 1,600억원이라는 공개된 투자 규모가 증명한다.
조선 AI 전쟁이 던지는 질문
한국 조선 3사가 2025년 하반기 동시에 AI 조직을 CEO 직속으로 격상한 건 단순한 트렌드 추종이 아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현실화되고,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공기(工期)가 승부처가 된 지금,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조선업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산업으로 분류돼 왔다. 그런데 그 '보수적인' 산업에서 AI에 1,600억원을 투자하고, 용접 100% 자동화를 2030년 목표로 내걸고, 드론이 30분마다 150만평을 스캔하는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당신의 제조 현장에서, 가장 먼저 AI로 대체할 고위험·반복 공정은 무엇인가? 조선 3사가 증명한 것처럼, 답은 '모든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하나부터'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