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만 개 스마트공장을 보급했다. 10조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10곳 중 9곳이 기초 수준에서 멈춰 있다. 시스템은 돌아가는데 데이터는 쌓이지 않고, 화면만 반짝이는 공장이 태반이다. 하림은 2,600억 원을 쓰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반면 경남 의령의 열처리 공장은 생산량이 75% 뛰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성공한 공장 — 카메라 한 대로 연 11억을 아꼈다
학화1934. 충남 예산에서 호두과자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2023년 AI 비전 카메라를 공정에 붙였다. 굽기 전 반죽 상태, 구운 뒤 색상과 크기를 실시간으로 판독한다. 수율이 65%에서 78%로 올랐다. 불량으로 버리던 연간 21억 원어치 제품 중 11억 원을 살렸다. 설비투자비는 1년 만에 회수했다.
이노블록은 골재 입도를 눈으로 확인하던 품질검사를 AI에 맡겼다. 60분 걸리던 작업이 6초 만에 끝났다. 완제품 불량률은 36% 개선. 사람 눈으로 놓치던 미세 입자를 카메라가 잡아냈다. 의령 대성종합열처리는 생산량 75% 증가, 불량률 50% 감소를 동시에 달성했다. 경남도가 439개 도입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품질은 평균 44.3%, 생산성은 22.8% 향상됐고 원가는 32.5% 낮아졌다.
공통점이 있다. 한 번에 모든 공정을 바꾸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공정 하나를 골라 데이터를 쌓고, AI가 읽게 한 뒤,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매출 100억 원 미만의 작은 공장일수록 개선 폭이 더 컸다.
실패한 공장 — 2,600억 투자하고 라인이 반만 돌았다
하림은 2,600억 원을 들여 스마트공장을 지었다. 완전 자동화를 목표로 한 최첨단 시설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수요 예측이 빗나갔다. 자동화 라인은 설계 용량의 절반만 가동됐다. 돌아가지 않는 설비의 감가상각비와 이자만 눈덩이처럼 불었다. 2024년 결국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아디다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16년 독일 안스바흐에 스피드팩토리를 열었다. 로봇이 운동화를 완전 자동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로봇의 유연성이 사람 손을 따라가지 못했다. 시즌마다 디자인이 바뀔 때마다 재프로그래밍 비용이 치솟았다.
국내 중소기업 현장은 더 냉정하다. 한국생산성본부 조사에서 디지털 전환 경험 기업의 43.1%가 "전문 인력이 없다"고 답했다. "신기술을 운영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38.8%였다. 안산의 한 자동차 부품사는 1년 만에 시스템을 껐다. 작업자들이 디지털 기기를 어려워했고, 쌓인 데이터를 분석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서 안 쓰는 시스템은 고철이다.
왜 90%가 멈췄나 — 보급은 했는데 운영은 안 했다
정부 사업은 양적 확대에 집중됐다. 보급 실적이 목표였고, 사후 관리는 뒷전이었다. 공급기업이 만든 천편일률적 시스템이 주방비누 공장과 자동차 부품 공장에 똑같이 들어갔다. 유지보수 비용은 전액 중소기업 부담이다. 월 수백만 원의 시스템 유지비보다 사람을 한 명 더 뽑는 게 싸다는 판단에 전원을 내리는 공장이 속출한다.
단계적으로 접근한 기업은 달랐다. 학화1934는 AI 카메라를 붙이기 전에 6개월간 기존 생산 데이터부터 정리했다. 항아골식품은 1차로 진공포장 자동화로 생산량 35% 향상을 확인한 뒤, 2차로 MES를 도입하고 FSSC 22000 인증까지 받았다. AI 도입률이 식품 제조업 0.9%, 자동차 부품 2.9%로 갈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부품은 현대·기아 납품 조건 때문에 수년 전부터 공정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기록해왔다. 식품은 그런 인프라가 없다.
보조금으로 기계를 사는 것과, 그 기계가 데이터를 만들고 AI가 그 데이터를 읽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부 보급 사업은 전자에만 집중했고, 후자는 공장주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뒀다.
시작은 작게 — 한 공정부터 데이터를 완성하라
스마트공장의 성패는 센서 개수나 설비 가격이 아니라 데이터와 그걸 읽는 사람이 결정한다. 90%가 기초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도입보다 활용과 인력 양성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2,600억을 한 번에 쏟는 것보다 학화1934처럼 카메라 한 대로 11억을 아끼고 시작하는 게 낫다.
먼저 종이로 관리하던 공정 하나의 데이터를 디지털로 옮겨라. 6개월만 쌓아도 AI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그다음에 가장 문제가 큰 공정 하나를 골라 작은 AI 솔루션을 붙여라. 수율 13% 상승이라는 숫자가 나오면 작업자들의 태도가 바뀐다. 그렇게 공정 하나씩, 사람 한 명씩 설득해가는 게 스마트공장의 진짜 로드맵이다. 장비가 아니라 사람과 데이터가 핵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