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에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까지 겹친 2026년 상반기, 석유화학은 장치산업의 생존 방정식을 다시 쓰고 있다. 설비는 줄이는데 AI 투자는 오히려 늘린다. 그 이유를 파헤친다.
15조 원 R&D와 샤힌 9조 원, 돈은 AI로 흐른다
LG화학은 지난 6월 발표에서 2035년까지 15조 원을 R&D에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이 중 70%인 10조 5,000억 원이 반도체·모빌리티·로봇 소재와 항암제로 향한다. 기존 범용 제품 마진이 중국에 밀려 무너지니, 고부가 스페셜티로 피벗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임직원 AI 분석 플랫폼은 이미 제조 현장의 개선 과제를 발굴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고, AI 활용 교육을 받은 인원만 3,000명을 넘겼다.
S-OIL은 1분기 실적 발표 기준, 샤힌 프로젝트에 9조 2,580억 원을 투입했다. 온산단지에 석유화학 설비를 통째로 짓는 프로젝트로, 공정률 96.9%까지 왔다. 올해 완공을 앞두고 1분기 영업이익 1조 2,311억 원을 냈지만, 재고효과 6,434억 원이 절반 넘게 포함돼 있다. '특수형 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쯤 되면 정유에서 화학으로, 증설에서 운영 최적화로 투자 축이 완전히 이동한 게 눈에 보인다.
GS칼텍스는 자체 미디어허브 공개 기준, 여수공장 대정비에 2,000억 원을 썼다. 60일 동안 9개 공정에 하루 평균 3,000명이 투입됐다. 여기에 AI 튜브 클리닝 로봇을 넣어 청소 사각지대를 없애고 열효율을 끌어올렸다. 다중 위험 상황을 동시에 감지하는 AI CCTV는 보호구 착용, 안전 걸고리 체결, 중장비 접근을 한 번에 판별한다. 설비는 줄여도 AX는 키운다. 그게 2026년 석화업계의 생존 공식이다.
자재 데이터 8만 건, 예지보전으로 돌발 정지 잡는다
S-OIL이 자체 개발한 구매 AI 에이전트는 공급사 도면과 자재 명세서에서 핵심 정보를 뽑아 ERP에 자동 등록한다. 8만 개 자재 데이터의 완결성과 정확도를 높였고, 연 5,000시간 이상의 처리 시간을 단축했다. 지금은 2만 개 공정 자재로 확대 적용을 준비 중이다. 구매팀이 더 이상 도면과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은 IT조선 보도에 따르면, 딥아이와 손잡고 세계 최초로 AI 비파괴검사 자동 평가 솔루션을 내놓았다. 열교환기 결함 검사 정확도 95% 이상, 검사 시간은 90% 단축. 울산CLX에서 실증을 마치고 전면 적용에 들어갔고, 정유·석화 단지로 확산을 추진 중이다. 설비자산 관리 시스템 OCEAN-H는 울산 5개사에 공급하며 3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마트비계, 스마트작업허가서로 제품군도 늘리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여수 고무공장과 울산 사업장에 AI CCTV와 IoT 센서 기반 예지보전 모델을 깔았다. 고위험 구역 모니터링과 설비 이상 징후 사전 예측이 동시에 돌아간다. 돌발 셧다운 한 번이면 대형 화학플랜트에서 시간당 수억 원이 증발한다. 예방보전에서 상태기반 유지보수, 예지보전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간 이유다. 롯데케미칼도 기초·첨단소재 부문에 AI 전담 조직을 꾸려 촉매 개발, 품질 개선, 설비 유지보수, 소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정부 260억·얼라이언스, 중소 협력사까지 닿아야 산다
정부는 월간 플랜트기술 보도 기준,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 이후 고부가 기술개발 과제 2건에 260억 원을 신속 지원했다.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이 각 6,000억 원씩 총 1조 2,000억 원을 증자해 NCC를 통합하는 초대형 사업재편과 맞물린 조치다. 중장기적으로 AI 기반 소재 설계, 공정 혁신, 바이오 원료 전환 R&D도 병행한다.
GS칼텍스는 7월 산업부 AI 자율제조 얼라이언스의 정유·석화 앵커기업으로 선정됐다. 여수산단에서는 석화 전후방 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공정 안정화, 신제품 개발, 인력 운영 효율화 AX 사업이 진행 중이다. GS칼텍스의 사내 AI 플랫폼 AIU는 자체 집계 기준 월 사용자 2,713명, 누적 에이전트 1,079개까지 성장했다. DX 사례 100건 이상, 올해 데이터 분석 모델 20건을 추가로 돌리고 있다.
문제는 중소 협력사다. 투자 여력이 부족하고, 영업기밀 우려로 데이터 공유에 소극적이다. AX가 구조조정의 대체재가 아니라 남길 설비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어적 투자라면, 효과를 수율·에너지·안전 지표로 입증하는 게 관건이다. 혼자만 빨라선 안 된다는 얘기다.
숫자가 말하는 석화 AX, 현장이 답한다
석유화학은 장치산업이다. 공장이 멈추면 분당 수백만 원이 증발한다. 중국발 공급과잉 속 2026년 석화업계는 설비 감축과 AI 투자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LG화학 15조 원 R&D, SK이노베이션 95% 정확도 비파괴검사, S-OIL 8만 건 자재 데이터 자동화. 숫자는 절박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AI 고도화는 장기 축적 데이터와 OT·IT 융합 인력이 필요하다. 중소 협력사까지 닿지 않으면 반쪽짜리 생태계다. '몇 년 안에 회수하나'라는 현장의 ROI 질문에 답해야 움직임이 진짜가 된다. 당신 공장의 첫 AI 센서는 어디에 붙일 것인가. 플레어스택인가, 회전설비 진동 센서인가, 아니면 8만 건 자재 데이터의 구매 패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