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L Group의 펌프가 멈추기 78일 전, AI가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 헝가리 석유화학 공장의 Aspen Mtell은 진동 데이터에서 미세한 패턴 변화를 찾아내 수백만 달러 규모의 비계획 다운타임을 막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OIL은 3년간 255억 원을 투자해 30여 개 분산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했고, GS칼텍스는 80만 개 설비에서 올라오는 초단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폴리머 공정 이상 징후를 84.6% 확률로 잡아낸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AI가 공정을 최적화할수록, 구조조정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S-OIL S-imoms: 255억 투자로 30개 시스템 통합, 연 200억 효과
S-OIL이 완성한 S-imoms(통합 제조 운영관리 시스템)는 단순한 대시보드가 아니다. 2026년 5월 기준, 3년간 약 255억 원을 투입해 회전기기·압축기 등 핵심 장비의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했다. AI가 고장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면 예방정비를 자동으로 제안하는 구조다. 연간 2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예상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불시 가동 중단이 줄고, 안전사고가 감소하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기술 스택도 구체적이다. Hexagon ALI와 5년 전략적 협력 아래 Smart Digital Reality™ 플랫폼을 도입했고, Smart P&ID, Smart 3D, SmartPlant Owner Operator까지 연계했다. 디지털 트윈으로 공정 위험 요소를 사전에 식별하고, 지능형 P&ID 기반 설계 표준화로 설계 오류와 반복 작업을 최소화한다. 엔지니어링 업무는 원스톱 포털로 통합돼 정보 단절이 사라졌다. 현재는 울산 온산공장이 기준점이고, 타 사업장 확산을 검토 중이다.
LG화학 AX: AI가 스스로 운전 조건을 조정하는 공장
LG화학은 2020년 중반 DX(디지털 전환)를 시작해 2025년부터 AX(Advanced Transformation) 단계에 진입했다. DX가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단계라면, AX는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생산 조건을 조정하는 단계다. 최종 목표는 '자율운영형 공장(Autonomous Plant)'이다.
여수공장의 플레어 스택 이상 감지 시스템이 대표 사례다. 딥러닝 기반 영상 분석 기술로 배출가스 연소탑의 공정 이상을 실시간 감지한다. 온도·압력·유량 등 수백 개 변수를 실시간 학습해 이상 발생 시 자동으로 운전 조건을 조정하므로 숙련 기술자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조적 경고가 나온다. 한국기업평가 유준위 수석연구원은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제품 공급 과잉이 심각하다. 생산능력 감축이 선행되지 않으면 DX는 단기적으로 오히려 비용 부담"이라고 진단했다. 나이스신용평가 지형삼 책임연구원도 "설비 감축·포트폴리오 조정·기업 간 구조 재편이 선행돼야 DX 효과가 실질화된다"고 지적했다. AI가 공정을 아무리 최적화해도, 팔리지 않는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GS칼텍스: 80만 설비·20만 센서, 이상 탐지율 84.6% → 2028년 95% 목표
GS칼텍스 여수공장은 600만㎡, 여의도 두 배 면적에 80만 개 설비와 20만 개 센서가 깔려 있다. 초 단위로 올라오는 데이터를 1분마다 데이터 레이크에 적재하고,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정유와 석유화학 공정 모두에서 AI 예측 목표치 70%를 초과 달성했고, 특히 폴리머 공정의 이상 징후 탐지율은 84.6%에 도달했다. 2028년까지 95%가 목표다.
기술 체계도 야심 차다. MLOps 체계를 구축해 실험실 데이터와 현장 데이터를 연계하고, AI 모델의 학습 품질을 지속적으로 높인다. OOP(Operation Optimization Platform)이라는 AI 종합플랫폼을 구축 중인데, 설비 성능 저하·이상 상황·효율 감소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최적화 결과를 공정에 바로 반영하는 구조다.
2024년 10월, GS칼텍스는 경쟁률 8:1의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2028년까지 5년간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에서 100% AI 팩토리 전환 시 연간 탄소배출 1만 톤 이상 감축,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10% 이상 증대를 목표로 한다. 수소 생산 공정의 가열로 디지털 스캔은 이미 시범 도입을 마치고 타 공정으로 확대 중이다. 작업자의 육안 모니터링을 AI 실시간 최적 운전 조건 설정으로 대체해 연료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동시에 줄이는 접근이다.
SK이노베이션: 60년 노하우로 직접 만든 스마트플랜트 2.0
SK이노베이션의 접근은 국내외 솔루션 도입이 아니라 자체 개발이다. 2016년 업계 최초로 스마트플랜트를 도입한 후, 2023년부터 AI와 디지털 트윈을 접목한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40여 개 과제가 공정운전·설비관리·SHE(안전·보건·환경) 전 영역에 적용돼 연간 100억 원 이상의 비용 개선 효과를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정 자동 운전 프로그램으로 반복 업무와 시동·정지를 자동화하고, AI를 적용한 APC(공정 자동 제어)를 고도화했다. 로봇개는 가스 누출 감시와 게이지 측정에 투입된다. 설비관리에서는 진동·온도 데이터 기반 고장 예측 솔루션으로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드론으로 고소 설비를 검사하며, AR로 비계 작업을 시뮬레이션한다. SHE 영역에서는 250만 평 울산CLX의 통합 안전 모니터링으로 모바일 작업허가, 협력사 근로자 위치 관리, 밀폐공간 실시간 가스 감지, XR 안전교육을 운영 중이다.
눈에 띄는 건 인재 전략이다. CDS(Citizen Data Scientist) 90여 명과 AI·DT 전문가 10여 명을 양성했고, 신입 엔지니어는 CDS 과정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LLM 기반 엔지니어 기술 챗봇도 개발 중이며 하반기 현장 적용이 예정돼 있다. 60년간 축적한 기술과 공정 노하우를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AI에 접목한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SK인천석유화학: 세계 최초, 강화학습으로 압력 제어 상용화
하루 20만 배럴을 처리하는 중대형 상압증류탑. 이 설비의 공기 조절장치 제어를 강화학습 기반 압력 제어 시스템(RLPCS)으로 자동화한 사례가 나왔다. SK인천석유화학은 성균관대 김유성 교수팀과 협업해 실제 산업 제어 시스템에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통합하고 약 1년간 실운영을 검증했다. 결과는 압력 오차 12.8% 감소. 원유 성상 변화나 제품 규격 변화에 따른 공정 변동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론적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실제 산업 제어 시스템에 통합해 실시간 운영과 지속적 성능 향상을 달성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다. 향후 온도·유량 제어 등으로 확장이 예정돼 있다. 학계 알고리즘이 현장에서 작동한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AspenTech 사례: 글로벌 레퍼런스가 말해주는 ROI
한국 기업들의 사례가 아직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다면, AspenTech를 통한 글로벌 사례는 검증된 ROI를 보여준다.
MOL Group(헝가리)은 Aspen Mtell로 펌프와 컴프레서 고장을 78일 전에 예측해 전체 플랜트 가용률 96% 이상을 목표로 한다. Corteva(미국 농화학)는 Aspen Hybrid Models로 재보일러 비정상 정지를 방지해 연간 120만 달러의 유지보수비와 1,0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을 회피했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단 하루 만에 구축했고, 열전달 계수 예측 정확도는 99.9%에 달한다. BPCL(인도 정유)은 Aspen HYSYS 디지털 트윈과 DMC3 APC로 아민 재생 장치를 최적화해 하루 100MT의 스팀을 절감,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아끼고 투자비를 6개월 만에 회수했다. ADNOC(아랍에미리트)은 하이브리드 모델 디지털 트윈으로 콘덴세이트 수율 향상, 온실가스 배출 감축, 에너지 절감을 동시에 달성했다.
이 사례들이 공통으로 증명하는 건 하나다. 석유화학 공정 AI는 더 이상 PoC 단계가 아니라, 6개월~2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검증된 기술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생존을 결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AI 기반 예지 정비는 가동률 극대화·품질 편차 감소·공정 안정성 제고에 기여하나, DX는 구조조정과 병행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부는 2025년 나프타분해시설(NCC) 총 생산능력의 25%, 약 370만 톤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10개 주요 석유화학 기업에 연말까지 사업 재편안 제출을 요구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대산단지 설비 통합안이 첫 신호탄이지만, 여수·울산 산단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자발적 감축과 합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GS칼텍스가 80만 설비에서 AI로 84.6%의 이상 탐지율을 달성하고, S-OIL이 연 200억 원을 아끼는 동안에도 업계의 근본적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이 공장을 계속 돌려야 하는가?" AI는 효율을 계산하지만, 공장의 존폐를 결정하는 건 인간이다. 가동률 99%짜리 공장이 문을 닫는 역설. 디지털 전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미래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엔진을 제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