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분기 실적 발표. 삼성SDS, LG CNS, 현대오토에버, 포스코DX — 국내 SI 빅4의 성적표가 나왔다. 하나는 클라우드 매출 24% 증가로 웃었고, 다른 하나는 영업이익 42% 감소로 침묵했다. 같은 AI 훈풍인데 왜 누군가는 타고, 누군가는 흔들렸을까.
클라우드가 실적을 갈랐다
삼성SDS의 2분기 CSP(클라우드 공급자)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했다. SCP(삼성클라우드플랫폼) 수요가 늘었고, 공공과 대외 업종에 GPUaaS 서비스를 확대한 결과다. MSP(관리형 서비스)도 17% 성장했다. 금융권 AX 사업, 조선 업종 ERP 구축이 동시에 터진 덕분이다.
눈에 띄는 건 단기 실적이 아니라 중장기 베팅 규모다. 삼성SDS는 현재 110MW인 AI 인프라를 2029년까지 230MW, 2031년엔 800MW 이상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엔 두나무 지분 4%를 사들여 디지털 자산 인프라 시장에도 발을 들였다. 단순한 SI 회사가 아니라 클라우드·AI 인프라 사업자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LG CNS도 AI·클라우드 사업 매출이 5.1% 늘었다. AI 플랫폼과 데이터 영역 구축이 계속 증가했고, MSP 사업 확대와 AI 인프라 구축 수요가 매출을 견인했다. 하반기 전략은 피지컬 AI와 로봇 상용화다. 유망 로봇 기업들과 손잡고 RX(로봇 전환) 생태계를 구축하고, 범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부터 고난도 '로봇 손' RFM까지 산업 현장에 최적화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 최초로 수주한 인도네시아 AI 데이터센터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룹사 의존이라는 덫
반면 포스코DX는 매출 14.8%, 영업이익 42.3% 감소했다. 그룹사 투자 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대외 고객 매출 비중이 3%에 불과하다는 점이 뼈아프다. 현대오토에버는 그룹사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매출 20%, 영업이익 11.3% 증가했다. 클라우드 수요 증가와 차세대 ERP 전환 구축이 실적을 끌어올렸다.
두 회사의 엇갈린 운명은 같은 교훈을 말해준다. 그룹사 물량은 SI의 기본 밥이다. 하지만 그 기본 밥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안 되는 시장이 왔다. 현대오토에버는 해외 법인 성장과 클라우드 수요라는 추가 엔진을 달았고, 포스코DX는 아직 그 엔진을 찾지 못했다.
포스코DX가 내놓은 대응 전략은 'AI 네이티브 컴퍼니' 선언이다.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를 두 축으로 삼고, 제조 현장의 피지컬 AI와 그룹사의 AX를 동시에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작년부터 모든 SI 회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들이지만, 실제 대외 매출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버틸 체력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제 SI는 인프라 회사다
리미니스트리트가 지난 3일 AI 에이전트 거버넌스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소식도 같은 흐름에서 봐야 한다. SAP·오라클의 서드파티 유지보수로 20년 가까이 먹고살던 회사가, 이제 AI 에이전트의 보안·규정 준수·비용·성과를 통합 관리하는 구독형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ERP 유지보수라는 안정적 수익원을 발판 삼아, AI 에이전트라는 새 판을 까는 전략이다.
솔루엠도 지난 3일 SAP 기반 글로벌 ERP를 가동했다. 단순한 ERP 교체가 아니라 '클린 코어' 원칙을 설계 단계부터 적용한 프로젝트다. 핵심은 SAP 표준에 최대한 가깝게 유지하고, 회사만의 특화 요구사항은 표준 API와 별도 확장 영역에서 구현하는 접근 방식이다. '덜 만들고, 더 표준에 맞춘다'는 철학으로 ERP를 구축한 뒤, 그 위에 AI 분석과 의사결정 지원 기능을 단계적으로 얹겠다는 그림이다.
이 세 가지 뉴스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SI의 미래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인프라와 데이터를 운영해주는 회사'로 이동하고 있다. 삼성SDS가 800MW AI 인프라를 계획하는 것도, LG CNS가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것도, 리미니스트리트가 AI 에이전트 거버넌스를 서비스로 파는 것도,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구축 끝나고 유지보수 계약만으로 10년 더 버틸 수 있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기업들이 살아남고 있다.
중견 SI의 선택지 — 따라갈 것인가, 틈새를 찾을 것인가
이런 변화는 대기업 S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중견 SI 회사들에겐 더 절박한 문제다. 대기업 계열사 SI는 그룹사 물량이라는 쿠션이라도 있다. 독립계 중견 SI는 그 쿠션조차 없다. 구축형 ERP·그룹웨어 SI만으로 5년 뒤에도 살아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중견 SI 대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공공 SI 입찰에서 클라우드 네이티브·AI 연동을 요구하는 RFP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도 CSP 기반 인프라를 전제로 기획된다. 과거에는 'SI는 구축, 클라우드는 따로'였지만, 이제는 클라우드 역량이 SI 수주의 기본 자격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한 50인 규모 중견 SI 대표는 지난해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AWS·Azure 자격증 취득을 의무화했다. "SI 엔지니어가 클라우드 콘솔도 못 만지면, 3년 뒤엔 현장에 내보낼 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비용은 1인당 연 300만 원 안팎. 50명이면 1억 5천만 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이 투자 없이는 앞으로 수주할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클라우드 못 하는 SI는 이제 없다
2026년 2분기 SI 빅4 실적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클라우드 역량이 없으면 SI도 없다." 삼성SDS와 LG CNS는 수년 전부터 클라우드·AI에 투자해왔고, 그 결실이 숫자로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오토에버는 그룹사 디지털 전환과 클라우드 수요 증가라는 두 개의 엔진을 돌리고 있다. 포스코DX는 'AI 네이티브 컴퍼니'라는 깃발을 들었지만, 그 깃발 아래 대외 고객을 얼마나 빨리 모으느냐가 숙제다.
SI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온 필자의 시선으로 보면, 이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2~3년 전만 해도 "클라우드? 우리는 SI인데요" 하던 회사들이 지금은 앞다퉈 MSP·CSP 사업부를 만들고 있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게 아니다. 구축형 SI 프로젝트의 마진은 갈수록 얇아지는데, 클라우드 운영과 AI 인프라 관리에서 나오는 구독형 매출은 마진이 두껍다. 포스코DX가 영업이익 42% 감소를 겪는 동안 삼성SDS가 CSP 매출 24% 성장을 찍은 이유다.
한 SI 업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RFP에 'AI'가 안 들어가면 수주가 안 된다. 클라우드 없이 제안서 내는 회사는 아예 초대도 못 받는다." 이 한 마디가 지금 SI 시장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