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블록 도장 공정. 선박 건조의 마지막 관문이자 가장 까다로운 작업 중 하나다. 수십 미터 블록을 사람이 직접 분사 도장해야 하는데, 유해한 환경과 품질 편차가 문제였다. 조선소는 오랫동안 이 공정을 자동화하려 했지만, 로봇이 따라야 할 경로를 일일이 프로그래밍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숙련공의 눈과 손'을 기계가 대체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다.
HCNC(㈜에이치씨엔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변수'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다. 조선 도장 자동화 국책과제에 참여한 HCNC는 로봇 원격 티칭(OLP) 솔루션과 특수목적 로봇을 결합해, 도장 공정 자체를 AI가 판단하고 실행하는 체계로 전환 중이다. 텔레스코픽 붐 기술은 PCT 국제 특허 출원까지 완료했다.
20년 쌓아온 두 개의 레이어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한 배경에는 HCNC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05년 설립 이후 이 회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키워왔다.
하나는 OT(운영기술)다. 로봇 SI로 시작해 설비·검사·물류 자동화까지 —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로봇 팔이 부품을 집고 조립하는 모든 물리적 동작을 설계해왔다. 현재는 6개 분야(로봇 SI, 설비·검사·물류 자동화, 통합 모니터링, 스마트배움터)로 체계화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IT다. 전산센터 구축, SI(시스템 통합), ERP/MES 구축, Oracle 컨설팅에 더해, 전국 120여 개 병원의 혈액투석관리시스템(TDMS)을 유지보수하는 의료 IT 영역도 가지고 있다. 공공기관 ITO(IT 아웃소싱) 경험까지 더하면, 이 회사는 공장 바닥(OT)과 정보 시스템(IT)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기업 중 하나다.
데이터가 있고, 공정이 있고, AI를 붙였다
HCNC의 움직임이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다. OT와 IT, 두 레이어를 보유한 상태에서 AI를 세 번째 레이어로 얹었다. 2025년 산업AI EXPO에서 공개된 HANA 시리즈가 그 결과물이다:
- HANA-ONE: 데이터 전처리부터 모델 배포까지 AI 개발 전 과정 커버
- HANA-View: 정상 데이터만 학습해 비정상 패턴을 찾는 비전 검사 (현장 98%+ 정확도)
- HANA-Opt: 생산 공정 데이터 기반 효율 최적화
- HANA-Bot: 현장 작업자 질문에 응답하는 AI 어시스턴트
이 솔루션들은 반도체 도트형상 결함 탐지, H형강 표면 검사, 산업 현장 안전 관리 등에서 실제 검증을 마쳤다. 이론이 아니라 현장 데이터로 튜닝된 AI인 셈이다.
국가가 인정한 AI 팩토리 전문기업
2025년 8월, HCNC는 산업부 'AI 팩토리' 전문기업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국가생산성대회 '미래 유니콘기업' 장관 표창, SK이노베이션 ESG 우수협력사 선정도 잇따랐다.
실제 프로젝트는 더 의미 있다. 방위·위성 전장부품용 AI 자율제조 시스템 과제는 군수품·위성 부품의 초고품질을 요구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다. 전국 최초 'AI 로봇개' 교육 프로그램(KBS 보도)도 HCNC가 운영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더 큰 흐름과 맞물린다. 2026년, 피지컬 AI는 기술 전시장을 넘어 실제 공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한국 정부는 6월 '제조 AI 2030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 피지컬 AI 글로벌 1위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엔비디아는 CES 2026에서 로봇과 자율 시스템을 위한 AI 풀스택을, 딜로이트는 'AI의 물리적 환경 적용'을 올해 핵심 트렌드로 꼽았다.
피지컬 AI의 현실 — 거대담론이 아닌 공정 하나부터
HCNC의 접근법은 이 큰 흐름 속에서도 독특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범용 AI보다는, 지금 당장 공장에서 쓸 수 있는 '공정 단위의 AI 자동화'에 집중한다. 조선소의 도장, 방위산업의 전장부품 조립, 반도체의 결함 검사 — 하나의 공정을 AI가 통째로 운영할 수 있게 바꾸는 방식이다.
이영우 HCNC 대표는 "산업별 맞춤형 AI 팩토리 모델을 제시해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업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한다.
80%에서 20%로 — 공정 하나가 바뀌면 생태계가 움직인다
HCNC의 행보에서 읽어야 할 것은 단일 회사의 성공담이 아니다. 피지컬 AI가 실제로 산업에 스며드는 패턴이다.
이 회사가 조선소 도장 공정에서 시작해 방위산업·반도체·의료로 확장해온 과정은, OT와 IT를 모두 가진 기업이 AI를 얹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공정 데이터를 확보하고, 자체 솔루션으로 분석하고, 국책과제와 민간 수주로 검증하며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선순환이다.
정부가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피지컬 AI 시대에, 실제로 필요한 건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공장 바닥을 아는 기업이 AI를 만났을 때, 경쟁력은 공정 하나에서 시작된다."
HCNC가 조선소 도장공장의 로봇에게 판단력을 심어준 그 순간처럼, 제조업의 AI 전환은 거창한 청사진보다 조용히 돌아가는 공정 하나에서 시작된다.
[출처: HCNC 공식 홈페이지(hcnc.co.kr), 전자신문, IT비즈뉴스, 테크42, 조선비즈, 울산제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