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14년 묵은 전력망 분석 모델을 갈아엎었다. 서울·경기·부산 3개 변전소 159개 데이터로 버티던 시스템을 전국 9만5000개 실계통 데이터로 재구축, AI로 연간 1100억 원 전력구입비를 아낀다. 발전소가 아니라 '운영'이 돈을 번다.

낡은 모델이 불러온 병목 — 159개 데이터의 한계

2012년부터 14년간 한전은 서울·경기·부산 3개 변전소 데이터 159개로 전력망 수요를 분석했다. 데이터센터 폭증, 전기차 50만 대 돌파, 재생에너지 30% 시대가 온 지금, 159개 포인트는 전국 계통을 설명하지 못한다. 동해안 발전소는 전기가 남아도 송전망이 막혀 수도권으로 못 보낸다. 호남 태양광은 점심 때 과잉발전으로 출력제어(커테일먼트) 당한다. 저비용 발전기가 놀고, 비싼 발전기를 돌려 전력구입비가 샌다. 한전 추산 연간 수천억 원 손실. 김동철 사장이 "AI로 전력망 운영 혁신"을 선언한 배경이다. 기존 모델은 과거 평균치에 의존해 급변하는 신규 수요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들어설 때마다 수요 패턴이 바뀌는데, 159개 샘플로는 이를 쫓을 수 없었다.

9만5000개 데이터가 바꾼 것 — 수요예측 90%, 선로투자 30% 절감

전력연구원은 전국 40개 변전소 9만5000개 실계통 데이터를 AI에 태웠다. 데이터센터·전기차·ESS 충방전 패턴까지 학습시킨 새 모델은 최대부하·구간부하 예측 정확도 90% 이상, 예측시간 30분 이내를 찍었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저비용 발전기(동해안 원전·호남 태양광) 출력제어 부담이 줄면서 연간 600억 원 전력구입비 절감. 배전망 쪽도 마찬가지다. AI 배전계통 부하예측으로 선로 신설비 연간 30% 절감, 250만 대 배전설비 교체시기 판정으로 교체비 15% 감축. 전력연구원 이중호 원장은 "설비 투자 없이 데이터만으로 투자비 30%를 아낀 셈"이라고 했다. Grid-K ADMS는 2017년부터 300억 원 투자해 재생에너지 연계 2.3GW 추가 확보, 건설비 4000억 원 절감, 연간 51억 원 운영비 절감을 동시에 달성했다.

0.1초 승부처 STATCOM — 전압 잡으면 500억 더 번다

수요예측만으론 부족하다. 병목 구간 전압을 실시간으로 잡아야 저렴한 전기가 흐른다. 한전은 올 2월 준공한 신태백·신양양 변전소 STATCOM(정지형 무효전력보상장치)을 AI로 최적 운전한다. 평상시 일정 수준 운전하다 고장 나면 0.1초 내 700~800MVar 무효전력을 뿜어 전압을 세운다. 에어백처럼 작동해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안정도를 끌어올렸다. 결과: 동해안 저렴 전력 추가 송전으로 연간 500억 원 절감. 신규 송전선로 건설비(조 단위) 없이 운영 기술만으로 뽑아낸 돈이다. 한전은 2035년까지 전 변전소 완전 디지털화, 시스코와 공동으로 디지털 변전소 아키텍처 개발 중이다. 네트워크 설비 운영·행동분석·자동화 모델 3종을 고창전력시험센터에서 실증한다.

하드웨어가 답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레버리지가 답이다

한전의 교훈은 명확하다. 발전소 짓는 돈이 답이 아니다. 300억 원 들인 ADMS로 4000억 건설비 아끼고, 9만5000개 데이터로 1100억 원 구입비 아낀다. 설비 투자가 '하드웨어'라면 AI 운영은 '소프트웨어 레버리지'다. 당신 조직에도 방치된 159개 데이터가 있다. 그걸 9만5000개로 늘리는 순간, 숨어 있던 1100억 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