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심사의견 초안을 작성하는 데 30분 걸리던 일이 10초로 줄었다. 카카오뱅크는 비금융 데이터만으로 중·저신용 대출 1조 2000억 원을 추가 공급했다. 신한금융은 통합 FDS 가동 2주 만에 8억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AI가 은행원을 대체한다"는 두려움이 무성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반대다. AI가 분석과 초안을 맡고, 최종 결정은 사람이 내리는 협업 체계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대출심사 30분→10초, AI가 심사의견 초안을 쓴다

하나은행은 2026년 3월 금융권 최초로 기업대출 심사의견 초안 생성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도입했다. 재무제표와 기업 정보, 산업 동향을 AI가 분석해 초안을 만들면 직원이 검토만 하면 된다. 연 7만 건의 신용평가 업무에서 2만 7000시간 이상 절감이 기대된다. 심사의견 채택률도 높아 현재 가계대출로 확대 중이다.

신한은행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12개 업종별 특화분석 엔진을 자체 구축한 '여신심사지원 Agent'를 도입했다. 동일한 재무지표라도 제조업과 유통업에서 해석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로직에 반영했다. LLM 생성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수십 년간 축적한 여신 데이터를 결합해 환각을 줄인 게 핵심이다. NH농협은행도 기업여신 사전심사와 심사보고서 작성을 자동화하는 PASS 체계를 구축하며 에이전틱 AI 뱅크 전환에 나섰다.

대출 문턱을 낮춘 대안신용평가, 카카오뱅크 1조 2000억

카카오뱅크는 소액결제, 택시 이용, 쇼핑 같은 비금융 데이터만으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을 심사에 적용해 중·저신용 대출 1조 2000억 원을 추가 공급했다. 더 눈에 띄는 숫자는 구성이다. 2023년 모형 적용 이후 취급한 중·저신용 대출의 12%(건수 기준)는 기존 CB사 모형에서 거절됐을 고객이다. 누적 중·저신용 대출은 16조 원을 넘었다.

금융 이력이 없는 씬파일러(Thin Filer)에서 특히 강점을 보인다. 대출 이용 상위 30%에서 씬파일러 비중이 기존 신용평가사 모형 대비 5~6배 높았다. 카카오뱅크는 이 모형을 고도화한 '카플 스코어'를 NICE평가정보에 탑재해 저축은행·캐피탈사에 제공 중이며, 연내 10개 이상 금융사가 도입할 예정이다. 2017년 CB사에서 데이터를 사던 은행이, 2026년에는 자체 모형을 외부에 파는 위치로 뒤집혔다.

이상거래 탐지, 룰 기반을 넘어 시퀀스와 LLM으로

신한금융은 금융권 최초로 그룹 통합 FDS(Fraud Detection System)를 구축했다. 은행·카드·증권·라이프 계열사 간 이상거래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구조다. 가동 2주 만에 의심정보 1111건을 분석해 이상거래 41건을 탐지, 약 8억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했다.

카카오뱅크는 거래 전후의 행동 맥락까지 분석하는 '시퀀스 탐지 모델'을 FDS에 적용했다. 어텐션 메커니즘으로 거래 순서, 시간 간격, 기기 변경 행태를 연결해 보이스피싱 모집계좌를 찾아낸다. 시범 도입 후 월평균 사기 예방 건수가 4.4배 증가했다. 우리은행은 LLM 기반 FDS로 신종 이상거래 패턴까지 AI가 생성·검증하도록 설계했지만, 최종 판단은 반드시 사람이 수행하는 HITL(Human-in-the-Loop) 체계를 유지한다. KB국민카드 AI FDS는 지난해 금융사기 차단율 83.9%, 차단액 376억 7000만 원을 기록했다.

HITL이 관건이다 — AI 오판이 용납되지 않는 영역

대출심사와 사기탐지는 AI의 오판이 용납되지 않는 영역이다. 대출 한 건의 오심사는 수억 원의 부실로 이어지고, 사기탐지의 오탐은 실제 고객의 거래를 막아버린다. 그래서 모든 은행이 공통적으로 채택한 구조가 HITL이다. 하나은행은 AI 초안을 직원이 검토하고, 신한은행은 업종별 엔진으로 LLM 환각을 보완하며, 우리은행은 LLM 기반 FDS에서도 최종 판단은 사람 몫으로 남겼다.

이 구조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AI 도입의 성패는 모델 정확도가 아니라, 사람이 AI 결과를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에 달렸다. 83.9% 차단율의 KB국민카드 FDS도, 1조 2000억을 추가 공급한 카카오뱅크의 대안신용평가도 결국 '사람+AI' 협업 구조를 전제로 작동한다.

분석은 AI가, 결정은 사람이 — 숫자가 증명하는 현장

은행 AI는 더 이상 상담 챗봇이 아니다. 대출 심사와 사기 탐지라는 은행의 두 축에서 AI가 실무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하나은행의 심사 시간 30분→10초, 카카오뱅크의 중·저신용 1조 2000억 추가 공급, KB국민카드의 사기 차단율 83.9%는 '파일럿 단계'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이미 너무 구체적인 숫자들이다.

공통 원칙은 명확하다. AI가 분석과 초안을 만들고, 최종 결정은 사람이 내린다. 이 원칙이 지켜지는 한 AI는 위협이 아니라 도구다. 중소기업이나 금융사가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다. 대출심사 자동화와 FDS 고도화를 별개의 프로젝트로 보지 말고, 데이터와 거버넌스를 함께 설계하는 하나의 체계로 접근하라.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심사의견 초안 하나, FDS 룰 하나부터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