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 — 에피소드 1: 접촉


04:27 KST —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레이더 화면에 처음 찍힌 건 4개의 점이었다. 방위 217, 거리 89해리, 고도 28,000피트. 속도 480노트. 민간 항공로에서 17해리 빗겨나 있었다.

기지 당직자는 커피를 내려놓고 두 번 확인했다. 트랜스폰더 신호 없음. IFF 응답 없음.

그는 전화를 들었다. 제주방공통제소로 연결하는 데 11초.

04:31 KST — 제주방공통제소

"비식별 항적 4기, 방위 217에서 북상 중. 속도 480노트 유지."

중위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항적은 정연한 전투편대 형태였다. 2기씩 쌍을 이룬 전형적인 전투초계 패턴. 레이더 반사면적 분석 결과는 5분 후에나 나오겠지만, 경험상 저건 전투기였다.

그는 마이크를 눌렀다. 대구기지. KF-21 즉응대기 2기에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04:33 KST — 대구 공군기지, 제11전투비행단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이준호 대위는 이미 깨어 있었다. 밤비행 복귀 4시간째.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블랙리더 1호기. 코드 원. 긴급발진."

KF-21 보라매 Block II. 자체중량 11,800kg에 F414-GE-400K 터보팬 2기가 쥐어짜는 추력은 애프터버너 개방 시 22,000파운드씩. 이준호는 조종석에 몸을 밀어넣으며 숫자들을 머리에서 지웠다. 1,200시간의 비행 중 이런 긴급발진은 열두 번째였다. 실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뭔가 달랐다. 관제탑의 목소리 톤. 통신 채널의 정적 사이로 흐르는 긴박감.

"블랙리더, 활주로 36R 클리어."

그는 쓰로틀을 밀었다. 22,000파운드의 추력이 17.8톤의 기체를 활주로로 밀어붙였다. 1,200피트 지점에서 로테이션. 2.5초 후 기수 인상. 보라매는 22도의 받음각으로 떠올랐다.

우측 날개 뒤에서 윤재호 중위의 2호기가 800피트 간격으로 따라붙었다.

04:41 KST — 오산기지, 제7공군 정보분석반

김서연 소령은 위성영상과 ELINT 데이터를 동시에 띄워놓고 있었다. 중국 동해함대 소속 J-20으로 추정. 4기.

"왕웨이네."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동해함대 제6구축함지대의 패턴이었다. 지난 6개월간 이 해역에서 11회의 유사한 접근이 있었다. 모두 무장발사 없이 회피. 냉전 이후 가장 긴장된 공중 조우였다.

04:44 KST — 고도 32,000피트, 이어도 서방 63해리 상공

KF-21의 AESA 레이더가 4기의 표적을 포착했다. 거리 48해리에서 교전 모드로 전환. Meteor 미사일의 최대교전거리는 100해리지만, 이준호는 무장 선택기를 안전 위치에 두고 있었다.

"미확인 항적, 방위 045, 거리 42해리. 접근 중."

J-20이었다. 전면 레이더반사단면적 0.01㎡ 이하. 하지만 AESA는 각도에 따라 35해리에서도 포착이 가능했다. 보라매의 레이더는 이미 그들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윤재호의 목소리가 인터컴에 실렸다. "형, 저쪽도 우릴 봤습니다."

J-20 편대가 기동을 바꿨다. 2기는 고도 유지. 나머지 2기는 15도 좌선회하며 KF-21의 9시 방향으로 돌아 들어왔다. 전형적인 협공 포메이션.

이준호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심박계가 분당 72회를 가리키고 있었다.

"재호야. 천천히. 놈들이 먼저 결정하게 둬."

04:52 KST — 계룡대, 합동참모본부

민경수 대령은 벽면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작전 지도에 실시간으로 찍히는 항적들. 이어도 서방 42해리. 저건 더 이상 훈련이 아니다.

NSC 긴급소집까지 18분.

04:58 KST — 고도 35,000피트

거리 15해리까지 좁혀졌을 때, J-20 편대는 갑자기 북서쪽으로 선회했다. 무장 베이 닫힌 상태. 미사일 발사 징후 없음. 회피.

이준호는 10초간 숨을 참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관제에 통보. 적기 퇴각. 대한해협 상공 이상 없음."

통신 채널 저편에서 누군가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실이든 조종석이든 거기 있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건 시험이었다. 그리고 통과한 거다.

하지만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에피소드 2에서 계속 — "그림자": 동중국해 수중에서 KSS-III 도산안창호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