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키보드 대신 환자 눈을 본다. 진료 차트는 5초 만에 완성되고, 같은 시간에 보는 환자는 1.5배로 늘었다. 새벽 3시, AI가 심전도 이상을 감지해 생명을 구한다. 신약 개발 비용은 3조 원에서 6,000억 원으로 줄었다. 2026년 대한민국 의료 현장, AI가 숫자로 말하기 시작했다.

차트 5초, 진료 1.5배 — 400곳 병원이 선택한 EMR 자동화

스튜디오키코의 의료 AI '니어닥'은 출시 두 달 만에 병·의원 400곳을 확보했다.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 분석해 SOAP 차트를 5초 만에 EMR에 입력하는 구조다. 도입 병원 조사 결과, 차트 작성 시간은 평균 70% 감소했고 동일 시간 진료 환자 수는 1.5배 증가했다. 유료 전환율은 50%를 넘겼고 월 반복 매출 1,230만 원을 기록 중이다. 의료 AI 엔진 '자이나'는 임상진료지침 조회부터 의료사고 위험 항목 검증까지 4단계 검증을 거쳐 할루시네이션을 차단한다. 누적 4만 건 진료 중 의료사고·분쟁 오류는 0건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심초음파 AI로 판독 시간을 8~9분에서 1분으로 단축했다. 81가지 지표를 자동 측정하고 스트레인 분석까지 수행하며, 전문의 판독 일치율은 0.95를 기록했다. 검사량도 30% 늘었다. 가천대 길병원은 20개 진료과에 음성인식 EMR '닥터펜슬'을 도입해 기록보다 환자 소통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일산병원은 루닛 AI로 응급환자 진단명 추론에서 전문의와 94% 일치, 약물 이상반응 요약 86% 유사도를 기록하며 'AI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병원'으로 전환 중이다.

새벽 심전도가 잡은 부정맥 — 24시간 웨어러블이 바꾼 병동

문산중앙병원은 2024년 12월 대웅제약의 웨어러블 모니터링 '씽크'를 60병상에 도입했다. 간호사가 2~3시간마다 돌던 '점 관리'에서 24시간 연속 '선 관리'로 전환된 것이다. 새벽 3시, 50대 남성 환자의 심전도 리듬 이상을 AI가 감지했다. 환자는 자각 증상조차 없었지만, 다음 날 정밀 검사에서 부정맥이 확진돼 약물 처방으로 이어졌다. 동탄시티병원은 180병상 중 90병상에 씽크를 적용해 수술 후 산소포화도 저하를 조기 감지하고, 야간 낙상 위험 알람으로 사고를 예방했다. 간호사는 "병실 도는 횟수가 줄고, 진짜 필요한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씽크는 누적 1만 7,000병상까지 확대됐다. 만성질환·심혈관 리스크 환자부터 수술 후 회복 환자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며 야간·격리병실의 진료 공백을 메우고 있다. 웨어러블 하나가 병동 전체의 안전망이 된 셈이다.

신약 1상 80% 성공, 비용 3조→6,000억 — 숫자로 검증된 AI 신약개발

보스턴컨설팅그룹 분석에 따르면, AI가 발굴한 후보물질의 임상 1상 성공률은 80~90%다. 기존 40~60%에서 두 배 가까이 뛴 수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AI 도입 시 신약 개발 비용이 3조 원에서 6,000억 원으로, 기간은 12년에서 7년으로 단축된다고 추산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빠르다. 한미약품은 자체 AI 플랫폼 '하프'로 비만 치료제 HM17321의 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80% 단축해 글로벌 임상 1상에 진입시켰다. 대웅제약 '데이지'는 8억 종 화합물 DB를 기반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최적화까지 2개월, 항암 선도물질 확보에 6개월이면 충분하다. 기존 1~2년이 걸리던 작업이다. JW중외제약 '제이웨이브'는 4만 5,000개 화합물 데이터로 대사질환 후보물질 DDC-02의 2028년 글로벌 임상을 목표로 한다. 셀트리온은 신약개발·제조공정·일반사무 전 영역에 AI를 전면 도입했다. 정부도 K-AI 신약개발 사업에 371억 원, K-멜로디 연합학습에 348억 원을 투입해 2029년까지 IND 6건 실증을 목표로 삼았다.

KISTEP은 "올해가 AI 신약개발 성과 검증의 해"라고 평가했다. 후보물질 발굴 단계를 넘어 임상 성공률과 상용화 데이터가 쌓이는 국면이다.

현장이 선택한 AI, 숫자가 답한다

차트 작성 70% 단축, 병동 24시간 연속 감시, 신약 임상 1상 성공률 80%. 따로 놀던 세 현장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의 눈을 보고, 간호사는 위급 환자에게 집중하고, 연구자는 실패 확률이 낮은 후보만 골라서 밀어붙인다. 400곳 병원, 1만 7,000병상, 371억 원 국가 예산이 증명한 것은 기술의 위대함이 아니라 현장의 선택이다. 병원도, 제약사도, 정부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AI 도입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