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능 하나에 ERP 비용이 10배까지 벌어진다. 영림원은 K-봇을 구축형으로 붙이고, SAP는 줄을 공짜로 주되 고급 AI는 소비형 유닛을 산다. 오라클은 에이전트 600개를 번들에 묶어 무료로 얹었다. 같은 'AI ERP'인데 과금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어떤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AI를 쓰느냐에 따라, 연간 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갈린다.

영림원, 3,000개 고객에 K-봇을 붙이다

영림원소프트랩은 2025년 4월 K-System Ace I&I를 출시했다. ERP에 그룹웨어와 MES를 통합하고, AI 가이드봇 'K-봇'을 얹었다. K-봇은 회계 전표 요약, 이력서 분석, OCR 기반 서류 입력을 처리한다. 100여 개 AI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적용하는 중이다.

눈에 띄는 건 신중함이다. 권영범 대표는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마술을 믿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ERP는 정형 데이터가 오차 없이 흘러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생성형 AI는 정확성과 일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림원은 AI를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산업별 프로세스에 붙이는 전략을 쓴다.

고객사는 3,000여 곳. 케이엠헬스케어는 9개월 만에 구축을 끝냈다. 테크엘은 외산 ERP를 걷어내고 K-System Ace로 돌아온 윈백 사례다. 도입 비용은 구성품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만, 구축형이 주는 장점은 분명하다. 국내 규제와 현장에 맞춘 커스터마이징이 처음부터 가능하다는 점이다.

SAP, 줄은 공짜인데 프리미엄 AI는 유닛이 전부다

SAP의 기본 AI 비서 '줄(Joule)'은 S/4HANA 클라우드 구독에 포함돼 추가 비용이 없다. 문제는 프리미엄이다. 고급 AI 기능은 'AI 유닛'이라는 소비형 크레딧으로 과금된다. 연 단위 구매인데 12개월 안에 못 쓰면 소멸된다. 공급망·재무 패키지는 사용자당 월 8~1 유닛을 잡아먹고, 문서 처리 1건에 0.005유닛, 문서 AI 요청 1건에 0.1유닛이 차감된다.

여기에 FUE 라이선스 체계가 겹친다. 고급 사용자는 1명이 1 FUE지만, 핵심 사용자는 5명이 1 FUE, 셀프서비스는 30명이 1 FUE다. 이 사용자 분류를 잘못하면 비용이 5배까지 뛴다. 실제로 ATNS는 권한 재설계만으로 750 FUE를 200 FUE로 줄여 연간 라이선스 비용을 75% 절감했다.

삼성전기는 S/4HANA 전환으로 프로세스를 40% 줄이고 총비용을 62% 절감했다. 다운타임은 144시간에서 34시간으로, 76% 단축했다. 같은 SAP라도 누가 어떻게 계약했느냐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AI가 아니라 과금 구조를 제대로 읽는 기업이 승자다.

오라클, 에이전트 600개를 무료로 번들에 싣다

오라클은 2026년 3월 퓨전 클라우드 ERP에 AI 에이전트 600여 개를 심었다. 총계정원장, 미지급금, 비용 처리, 결제 에이전트가 장부 마감과 이상 거래 탐지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이 모든 기능은 추가 라이선스 없이 기존 구독에 포함된다.

대신 기본 가격이 높다. 퓨전 ERP는 사용자당 월 175~625달러, 재무 모듈이 최상단이다. 최소 25명부터 시작하므로 연간 소프트웨어 비용이 최소 25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까지 올라간다. 볼륨 할인 40~60%는 기본이고, 구현 기간 9~18개월은 예사다.

존슨콘트롤스는 150개 ERP를 오라클 하나로 통합했다. DHL은 유럽 9개국을 단일 플랫폼에 올렸다. 단, 전제가 있다. 표준 프로세스를 그대로 수용해야 값이 산다. 커스터마이징을 많이 요구하는 한국 기업은 구현 범위 협상에서 이미 비용이 갈린다. AI 기능은 공짜여도, 오라클에 맞춰 회사 프로세스를 바꾸는 전환 비용은 공짜가 아니다.

AI ERP, 비용을 결정하는 세 가지 질문

3사 전략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영림원은 산업 특화 구축형, SAP는 소비형 과금, 오라클은 비싼 번들에 AI를 무료로 얹는 구조다. 어떤 ERP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AI를 어떤 방식으로 쓸지가 먼저다.

AI 사용량이 많고 예측 가능하면 오라클의 번들 구조가 유리하다. 적게 쓰되 확장 여지를 두려면 SAP의 유닛 관리가 효율적이다. 국내 규제와 현장 밀착이 우선이고 정형 데이터의 정확성이 생명이면 영림원의 구축형이 답이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세 가지만 따져보면 된다. AI 기능이 기본 포함인지 추가 과금인지, 소비 단위가 사용자 기준인지 트랜잭션 기준인지, 그리고 그 분류 기준에 우리 회사 사용자가 어떻게 매핑되는지. 이 세 가지를 놓치면 어느 ERP든 예산을 훌쩍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