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이 2030년까지 8,921억 원 중 4,351억을 AI 전환에 쏟아붓는다. 싱가포르는 2040년까지 6,500만TEU 완전 무인항만을 짓는다. HMM은 109척 전 선단에 AI 자율운항을 단다. 컨테이너 하나 옮기는 데 사람 손이 사라지는 중이다. 숫자로 본다.
부산항 AX — 4,351억으로 한국형 자동화터미널을 설계하다
부산항만공사(BPA)가 내놓은 AX 로드맵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국산 컨테이너 크레인 6기와 트랜스퍼 크레인 34기를 직접 제작하고, 장비제어시스템(ECS)으로 하나로 묶는다. AI 에이전트가 컨테이너 적치 위치를 스스로 결정한다. 디지털트윈에서 시나리오를 미리 돌려보고, 실제 현장에 반영한다.
연간 450만TEU에 달하는 타부두 환적화물은 트램셔틀로 무인 이송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충돌 예측은 AI 영상이, 라싱 작업과 냉동컨테이너 관리는 로봇이 대신한다. 와이어로프 결함 진단은 엔키아와 공동 개발 중인 AI가 실시간으로 잔존수명까지 예측한다. 해양수산부 상용화 지원으로 5개 부두에서 27억 원 규모 실증이 진행 중이다. HD현대삼호와는 2026년 7월 피지컬 AI 공동 R&D MOU를 맺었다. 크레인 예지보전부터 운영시스템 고도화까지, 항만 전체를 AI로 다시 짜는 그림이다.
싱가포르 투아스·상하이 양산 — 무인 항만이 증명한 숫자들
싱가포르 PSA는 2025년 한 해 4,450만TEU를 처리했다. 부산항 2,488만TEU의 1.8배다. 현재 파시르 판장 터미널만으로 3,200만TEU를 소화한다. 자동화 게이트는 트럭 한 대당 30초, 야드크레인은 원격으로 움직인다. PSA가 발표한 AI 자동화 1단계 성과는 구체적이다. 선박 턴어라운드 15% 단축, 야드 밀도 10% 증가.
2040년 완전 개장하는 투아스 메가포트는 66개 선석에 6,500만TEU 규모다. AGV는 20분 충전으로 8시간을 일하고, 수심 23m에 55m 크레인이 버틴다. 완전 무인 구역에서 사람은 통제실에만 있다. 상하이 양산항 4기는 또 다르다. 2017년 개장한 세계 최대 완전 무인 터미널로, 원격 안벽크레인 26대와 AGV 130대가 전기로만 움직인다. 인력은 70% 줄었고 노동생산성은 기존 항만의 213%다. 2024년엔 설계 용량 400만TEU를 넘겨 700만TEU를 실제 처리했다. 터미널운영시스템(TOS)과 장비제어시스템(ECS) 모두 중국산으로 구성한 '차이나 코어'다. 이 기술은 이스라엘 하이파항을 포함해 14개 항만에 이미 수출됐다.
HMM 109척 — 바다 위 AI가 푸는 연료 방정식
항만만 바뀌는 게 아니다. HMM은 HD현대 계열 아비커스에 290억 원을 투자하고 전 선단 AI 자율운항을 선언했다. 1만3천TEU급 에메랄드호 실증을 시작으로 2025년 말까지 109척, 2030년까지 123척 전체에 AI를 탑재한다. 신조 1만3천TEU급 8척은 기본 사양이다.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컨트롤은 광학·적외선 카메라 6대로 20해리, 37km 앞까지 탐지한다. IMO 자율운항 레벨2 기준으로 AI가 최적 항로와 선속을 계산하고 장애물을 스스로 회피한다. 실증 결과 연료는 2.5~4.5% 절감됐다. 대형선 연간 연료비 100억~200억 원 기준으로 연간 200억~500억 원을 아낀다는 계산이다. 설치비는 1년 안에 회수된다.
로테르담·Konecranes·ZPMC — 글로벌 항만 AI 시장의 판
항만 AI 시장은 Research Nester 전망 기준 2035년까지 자동화 컨테이너터미널이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는다. Konecranes, Kalmar, ABB, ZPMC, Siemens가 장비와 제어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다. 로테르담은 Portbase PCS로 항만 커뮤니티 시스템을 구축했고, PortXchange로 AI 선박 입출항 예측까지 확장했다. 상하이는 LOGINK라는 국가 물류 플랫폼으로 민간 물류 데이터를 통합한다.
초기 투자비와 기술 인력 확보가 모든 항만의 공통된 약점이다. 부산항 AX도 8,921억 중 4,351억을 투입하지만, 싱가포르 투아스는 수조 원 단위, 상하이 양산은 2조 4천억 원을 썼다. 차이는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부산은 국산 장비와 국산 AI 에이전트라는 독자 노선을, 싱가포르는 글로벌 장비 업체와의 통합을, 상하이는 자국 기술 수출을 각각 택했다. 사이버보안과 지정학적 리스크도 변수다. 항만 AI 시스템이 해킹되면 물류 전체가 멈춘다. 세 전략 모두 자기 생태계를 만드는 쪽으로 수렴하지만, 데이터 주권을 누가 쥐느냐가 결국 승패를 가른다.
부산에 있는 HMM 선박종합상황실은 9,000여 개 파라미터를 분 단위로 모아 육상에서 43척을 실시간 통제한다. 연말까지 60척으로 늘린다. 윙 세일은 최대 20% 추가 연료 절감을 노린다. 탄소 배출은 연 25만 톤 감축이 목표다. IMO 규제가 강해질수록 AI 운항 최적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숫자가 말하는 것 — AI는 장비가 아니라 루프다
부산항 4,351억, 싱가포르 6,500만TEU, 상하이 700만TEU, HMM 200억 절감. 네 숫자의 공통점은 AI가 단순히 크레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항만·선박·화물을 하나의 데이터 루프로 묶는다는 점이다. BPA가 피지컬 AI로 노리는 '한국형 자동화터미널'은 국산 장비·국산 ECS·국산 AI 에이전트를 한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이다. 싱가포르는 CP4.0이라는 개념으로 컨테이너 항만 전체를 플랫폼화한다.
국내 해운·물류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부산항 AX처럼 국산 기술 스택으로 표준을 만들 것인가, 양산·투아스처럼 이미 완성된 무인항만을 고객으로 바라볼 것인가. 답은 예산에 있지 않다. 당신 회사 물류 데이터가 AI에게 말을 걸 준비가 됐느냐에 달렸다.
다행인 건 출발선이 같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도 2019년에 첫 삽을 떴고, 상하이 양산도 2017년에 개장했다. 부산항 AX는 이제 막 로드맵을 발표한 단계다. 2030년까지 6년. 지금 항만·물류 데이터를 정리하고 AI 적용 지점을 찾기 시작하면, 늦지 않았다. 첫 AI는 거창한 무인 시스템이 아니다. 컨테이너 하나의 최적 적치 위치를 AI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